아빠랑 놀자/VLOG 상념의 찌꺼기

사랑이 넘치는 곳에 불평등이 있습니다.

자격증 홀릭 2022. 6. 7.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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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넘치는 곳에 불평등이 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세상을 비판하는 글을 쓰는 오찬호 작가입니다.

뭐 불평불만 투덜이 작가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굉장히 어떤 화목한 한 가정을 비판을 한번 해볼까 합니다.

 

저희 집안의, 제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굉장히 화목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아내랑은 굉장히 신뢰가 두텁고 자녀들하고는 굉장히 수평적인 관계로서 육아 이런 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가정 안에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현미경을 가지고 조금 관찰을 해볼까 합니다.

저는 요즘 제가 하는 일과가 강연요청이 오면, 어떻게 답을 해주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과에요.

강연 요청이 오면, 여러 가지를 고려하겠죠.

시대에 대한 고민, 사회에 대한 고민. 그런 건 없고 강연료를 제일 먼저 걱정합니다.

그래서 강연료만 맞으면 아침 7시 요즘 기업들에서 조찬강연 이런 것을 많이 하는데, 아침 7시에 하는 그런 조찬강연도 가고,  10시에 하는 그런 강연도 가고. 심지어 제주도로 12일로 강연을 다녀오기도 합니다.

제가 이 결정을 하는데 있어서 단 한 번도 그 시간에 제 자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 적이 없습니다.

단 한 번도. 제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이유는 제가 아침에 어디 강연을 올 때, 제 아내가 아이들을 깨울 수 있기 때문이죠. 학교에 보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저녁에 늦게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있으려면 돌아오는 아이들을 제 아내가 케어를 해야 되는거죠.

학원을 보내야 되고, 간식도 줘야 되고, 저녁도 먹여야 되고, 목욕도 시켜야 되고. 그리고 제가 주말에 기차를 타고 지방에 강연을 갈 수 있는 이유는 그 시간에 제 아내가 제 아이들하고 블록놀이를 함께 해주기 때문이에요.

저도 블록놀이 굉장히 좋아합니다.

제 자녀들하고 블록을 쌓으면서 친교를 맺죠.

 10분만. 15분 이상이 지나가면, 굉장히 재능기부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에. 굉장히 힘이 드는 것이 사실입니다.

 

, 그런데 제가 이런 결정을 하게 된 것 나는 밖에 나가서 돈을 벌고, 제 아내는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이 상황이 벌어짐에 있어가지고 저희 집에서는 야 남자가 당연히 밖에서 일하는거지” “여자는 원래 모성애가 있으니까 아이를 돌보는거지 그딴 소리 단 한 번도 한 적 없습니다. 굉장히 민주적으로 토론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거죠.

제 아내는 원래 일을 하다가 결혼과 출산 때문에 흔히 말하는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경력단절을 회복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들을 했는데,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거죠.

경력단절 하는, 계속 저임금 노동에 종사할 수밖에 없으니까 그래서 회의를 했어요.

가족회의를 한 거죠. 가족회의 끝에 이왕이면 경력단절이 되지 않아서 그래서 임금이 계속 누적되고 있는 그 사람이, 고소득자가 계속 가계부양을 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가에 대해서 서로 합의를 한 거죠.

그러니까 가성비를 따져서 둘 중에 한 명이 가정에 남기로 한 겁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게 남자였던, 저였던 것이죠.

그렇게 우리 집안은 아주 화목하게 이 빌어먹을 기울어진 운동장.

이 잘못된 성 불평등의 사회를 굉장히 지지하고 있는 가정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 이 정도를 이야기를 하면 수많은 남성분들이 막 불끈불끈불끈 한다는 거죠. 이 말을 던지겠죠.

그래 뭐 어떻게 그렇게 됐는데 남자는 그만큼 더 고생을 하는 거잖아” “여성이 뭔가 집안에서 희생을 하고 남자는 밖에 나가서 굉장히 힘들게 고생하는 거 아니야라는 식으로 반론을 펼칩니다.

뭐 남자 엄청 고생하죠. 특히 그렇게 민주적 절차를 통해서 그래 돈은 내가 벌겠다 다짐한 저로서는 불평불만없이 돌아다녀야 됩니다. 그런데 신기한 게 하나 있는데, 남자인 저는 힘듦이 누적될수록 책이 자꾸 출간이 돼요.

그렇게 일곱 권이 출간이 되었습니다. 힘듦이 누적될수록 자꾸 방송에서 나와 달래요.

책이 출간되고 방송에 나오니까 강연료가 조금 오르기 시작합니다.

저는 힘듦이 누적될수록 오찬호라는 제 브랜드를 사회적으로 소통하고 있습니다. 전문성을 쌓아가고 있는거죠.

일반직장으로 따진다면 대리, 차장, 부장으로 승진하고 있는 겁니다.

이와 비례해서 제 아내는 가정에서 그 힘듦이 누적될수록 자신의 이름은 사라지는 거죠. 누군가의 엄마로서 누군가의 아내로서 집안일이라는 것을 열심히 합니다.

제가 바깥에 제 브랜드를 알릴 동안 제 아내는 블록쌓기의 신공이 되어가는거죠.

 

자 이정도로 말씀을 드리면 제가 초반에 화목한 가정에 대해서 비판을 해 보겠다’,

이 저희 가정의 실체가 어떠한지에 대해서 조금 우리가 공감하는 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래서 이러한 가정의 모습을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이다라고 말을 하고 다닙니다. 과거보다 어떤 폭력성이라든가 이런 것들이 조금은 좋아졌지만, 조금은 좋아졌겠지만 근본적인 그 사회구조,  가부장적 질서 속에서 어떤 남성의 경제활동과 여성의 보조적 역할 그것은 변한 것이 없는 것이죠. 한 사회학자는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을 이런 식으로 부연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실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가정의 모습은 남자가 제도적으로 부계가족주의를 이끌어가고 여성은 정서적 가족주의, 그 부계가족주의에 윤활유를 자꾸 집어넣는 그렇게 가족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거죠.

 

실제 논문의 제목이 부계가족주의에 실패?’ 물음표죠.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여전히 우리가 어디에 강연을 가거나 제가 대중들을 만나면 요즘 세상에 뭐가 불평등하다 그래” “요즘 세상에 성불평등이 어디 있어” “요즘은 여학생이, 여자가 뭐 원하는 것 다 할 수 있고 공부도 더 잘해” “그런 세상이야 그렇게 저한테 반문을 많이 하셔요. 그런 사람이 이런 지경에 이르렀으니까 불평등이 아주 심각한거죠. 겉으로는 뭔가 변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 어떤 구조적인 것은 전혀 변하고 있지 않은 것. 결국 주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이 아빠, 남자이고 그 반대편에 엄마, 여자가 있을 때, 결국 이 문제는 남자와 여자를 특정한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는 잘못된 실수로 이어지기 때문이라는 거죠. 남자와 여자를 뭔가 남자라면, 여자라면 위치를 다르게 규정짓고, 그 위치는 굉장히 수직적 관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실제 우리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에서 어떤 또 다른 불평등을 만들어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지금부터 말씀드리도록 할게요.

 

제 아들이 여섯 살이고 제 딸이 열한 살. 여섯 살짜리 아들이 자기 누나한테 요즘 막 이렇게 주먹질을 흉내를 잘 냅니다. 뭐 이렇게 한번 싸워보자 그러고 이렇게 흉내를 내요. 그런데 제 아내는 굉장히 폭력에 예민하기 때문에 굉장히 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때 꾸짖으면서 하는 말이 뭐냐면 야 남자가 여자 때리는 거 아니지 않냐?”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저하고 그 말 때문에 굉장한 논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사람이 사람 때리는 거 아니야라고 말을 해야지 그게 저는 이 상황에서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하는데, 마치 제 아내가 하는 말은 사내대장부가 왜 그런 걸로 화를 내! 이런 느낌으로 제 아이에게 교육을 시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이 우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폭력 그 자체에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되는 상황이 존재하고 있는데, ‘남자가 여자 때리는 거 아니야 라는 식으로 설명하다 보면 강한남자가 약한여자를 배려해줘야 된다라는 일종의 큰 고정관념을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고정관념이 결국 그렇게 남성이 여성을 배려하는 존재가 되면 좋겠지만 실제 우리사회에서는 어떻게 흘러 가냐면 여성은 뭔가 남자보다 참을성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어떤 인식을 가지도록 우리가 유도해 나간다는 거죠. 이런 걸로는 남자가 화내는 것은 통큰남자가 아니야 결국 이런 식으로 폭력을 멈출 수는 있었겠지만, 결국 그 가정에서 제 아이는 여성에 대한 어떤 특별한 이미지를 가졌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 중요한 것은 그렇게 해서 정말로 폭력을 저지르지 않으면, 뭐 그렇게 교육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교육에 노출될수록 여성을 향한 남성의 폭력이 더 빈번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거죠. 우리가 보통 데이트폭력 같은 것 얘기를 할 때, 아주 재미있잖아요. 데이트를 하다가 서로 화가 나요. 울화통이 쳐 오르죠. 배신을 했으니까. 그런데 왜 그 울분을 참지 못하고. 그 화를 폭력으로 풀어내는 성별은 99.9퍼센트가 남자죠. 굉장히 중요한 여기에 포인트가 있습니다. 그냥 우리가 수평적인 관계로 연애를 할 때는 그런 것이 겉으로 안 들어나겠지만 뭔가 이렇게 상황이 뒤집어졌을 때 내가 너를 위해서 얼마나 배려해줬는데”, “내가 여자인 너를 얼마나 챙겨줬는데” “어떻게 감히 네가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 거야 결국 같이 분노를 하더라도 강자의 분노는 또 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굉장히 매우 높은 거죠. 제가 남자가 여자 때리는 거 아니야 이 말을 가지고 지나치게 뭔가 확대해석을 한다고도 들릴 수가 있지만 이 지점이 왜 중요하냐면 결국 강자인 남자, 약자인 여자. 그래서 여성을 배려해줘야 된다는 인식을 어릴 때부터 갖다보면 이 남성들이 억울하다는 생각을 자꾸 가져요. 그 상황에 대해서 뭔가 억울하다는 생각을 자꾸 가지는 거죠. 그런데 이 억울함은 젠더교육, 성평등 세상을 만드는데 치명적인 장벽입니다. 우리가 보통 생산적인 논의를 해야 하는데, 여전히 나오는 말이 뭐냐면 왜 여자만 편한 정책들을 만들어 내느냐 그리고 뭐 제가 기업 강의를 가도 기업에서 남자사원이 손을 들고 이런 말을 합니다. “아니 뭐 물통은 다 남자들만 가는데 이거 역차별 아닙니까?” 이런 말들을 막 저 억울해 죽겠다 그래서 억울한 게 있으면 다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려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가집니다. 실제 세상은 물통을 못들 것 같은 사람을 차별하거든요. “이런 것 남자만 다 하잖아! 이거 역차별이야 말을 하지만 실제 우리 사회에서는 이런 거 여자가 못하더라면서 실제로 여성을 중요한 일에서 배제시키고 큰일을 주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런 성평등 논의에서 가장 많이 나온 이야기가 뭐냐면 진정한 성평등은 여자도 군대 가는 것 아닙니까 이런 말이에요. 그 말을 가만 들어보고 있으면 혼자 죽을 고생 하는 게 너무 억울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다함께 죽을 고생하자. 사회정책은 누군가의 심리적 만족을 위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사회구성원들이 객관적으로 안전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거죠. 어릴 때부터 남자라면 여자라면 이렇게 해야 된다 저렇게 해야 된다 그것이 왜 큰 문제를 야기하는지를 조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그 남자가 권력을 가진 조직의 상층부로 올라갈수록 그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이질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가 한번 고민을 할 필요가 있는 거죠. 이것이 만약에 우리가 문제라는 걸 알면 안하고 살아야 될 겁니다. 그런데 쉽지 않죠. 우리 일상을 현미경으로 관찰을 해보면 굉장히 그런 분위기를 거부할 수 없는 우주의 기운들이 돌아다녀요. 제가 포털사이트에 쪼잔하다라고 검색을 하면 쪼잔한 남자 특징 그리고 이제 쪼잔한 남자 연관검색어로 보통 이렇게 다 함께 나옵니다. 쪼잔하다는 어감부터가 뭔가 어쨌든 느낌이 안좋잖아요. 이미 어떤 남성다움을 거부했을 때, “어 나는 그냥 뭐 이런 거 싫어 이게 아니라 뭔가 대범하지 못하고 화끈하지 못하고 통 크지 못하고 그런 사람으로 오해를 받을 수가 있기 때문에 이왕이면 내가 사회적인 남자다움을 더 배우려고 노력을 하는 거겠죠. 아마 제 아내도 제 아들이 흔히 말하는 쪼잔한 남자가 될 거에 대한 우려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그런 식의 교육을 무의식중에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지점들을 막 찾아내고 없애 나가야 돼요. 그런데 그게 얼마나 힘드나면 제가 최근에 그 초등학교를 대상으로 노동에 관한 글을 썼어요. 노동을 소개하는 글이에요. 막 탈고를 하고 제 딸한테 읽어보라고 네가 첫 독자야 읽어봐 하고 줬어요. 계속 이상하다는 거예요. 뭐가 이상하냐고 물어보니까 제가 무의식중에 문장을 쓰는데 예를 들어서 노동의 고단함을 얘기할 때 은연중에 그 안에는 아빠가 회사 다니면서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본적이 있죠?’ 노동이라는 것은 굉장히 괴로운 거예요. 그 다음에 노동의 형태 과거보다 비정규직이 많아진 사회를 설명하는데, ‘할아버지가 일을 하시던 시대는 지금처럼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이 없었어요 노동의 주체를 철저하게 남성에 근거로 해서 서술을 하고 있는 거예요. 사실 별거 아닌 것 일수도 있어요. 그렇게 시장에 나와도 아무도 별 트집도 안잡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불편한 거죠. 저 안에 어떤 단어를 집어넣을 것인가. 어떤 단어를 사용해야지만 사람들이 이 단어에서 남성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지 않을까에 대해서 제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죠. 이런 선택들 누가 보면 굉장히 쓸데없는 선택이라, 쓸데없는 고민이라 하겠지만 결국 우리 사회는 이런 선택들이 모이고 모여서 좀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리가 일상을 현미경으로 굉장히 관찰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불평등한 우리집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런 것들을 굉장히 정교하게 관찰을 할 필요가 있는거죠. 일상을 관찰하시고 그것이 틀렸다고 생각하시면 하지 않으시면 되는 거죠. 하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우리가 희망하면, 우리사회는 좋아질 겁니다. 고맙습니다.

=> 생각해 볼 것이 많은 글이네요...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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